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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판파 전투

長坂之戰

연도: 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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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 세력

배경

208년 유표가 죽고 아들 유종이 싸움 없이 조조에게 항복하자, 신야의 유비는 갑자기 퇴로 없는 처지가 되었어요. 남쪽 강릉의 군수 물자를 노리고 철수하는 유비를 따라 십수만 백성이 피란길에 동행했고, 행군 속도는 하루 십여 리로 떨어졌습니다. 조조는 정예 기병 5천을 뽑아 밤낮없이 추격전을 걸었죠.

전개

당양 장판에서 따라잡힌 유비군은 궤멸했고, 유비는 처자마저 버린 채 수십 기로 달아났어요. 그 혼란 속에서 조운은 홀로 말머리를 돌려 유비의 갓난 아들 유선과 감부인을 찾아 구출해 돌아왔습니다. 장비는 기병 스무 기로 다리를 끊고 "내가 장익덕이다, 와서 겨루자"라고 외쳤고, 그 기세에 눌린 추격군은 감히 다가서지 못했죠. 유비는 한진 나루에서 관우의 선단과 합류해 하구로 탈출했습니다.

결과와 영향

참패였지만 전멸은 면했고, 이 생존이 역사를 바꿨어요. 하구로 탈출한 유비는 손권과의 동맹 교섭에 나설 수 있었고, 두 달 뒤 적벽에서 전세가 뒤집힙니다. 조운과 장비의 활약은 각각 "일신시담"과 정사에 기록된 일갈로 전설이 되었죠.

정사와 연의의 차이정사vs연의 (소설)

조운이 "조조군 50만 한복판을 일곱 번 드나들었다"는 스케일과 미부인의 우물 투신, 조조가 조운을 생포하라 명해 화살을 금지했다는 설정은 모두 연의의 살이에요. 정사는 조운이 아두를 품고 무사히 돌아왔다는 사실만 간결히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