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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벌·기타

남만 정벌 (남중 평정)

南中平定

연도: 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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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 세력

남중 세력

배경

이릉 참패와 유비의 죽음으로 촉이 휘청이자, 남중(운남·귀주 일대)의 호족과 이민족 지도자들이 오와 내통하며 일제히 반기를 들었어요. 북벌을 위해서는 등 뒤부터 안정시켜야 했기에, 제갈량은 국상이 끝나기를 기다려 225년 봄 몸소 남정에 나섭니다. 떠나는 길에 마속이 "성을 치는 것은 하책, 마음을 치는 것이 상책"이라는 방침을 건의했죠.

전개

제갈량은 군을 세 갈래로 나눠 반란 세력을 각개 격파하며 불모지라 불리던 남쪽 깊숙이 진군했어요. 한진춘추에 따르면 그는 이민족의 신망을 받던 지도자 맹획을 사로잡고도 처형하는 대신 진영을 구경시키고 놓아주기를 일곱 번 반복했습니다. 일곱 번째에 맹획이 "공은 하늘의 위엄이십니다. 남인은 다시 배반하지 않겠습니다"라며 진심으로 승복했죠. 제갈량은 그해 가을 안에 남중 전역을 평정하고, 현지 지도자들에게 통치를 맡긴 채 군을 물렸습니다.

결과와 영향

주둔군 없이도 남중은 촉이 망할 때까지 대체로 안정을 지켰고, 그 물자와 병력(무당비군 등)은 북벌의 밑천이 되었어요. 무력 진압이 아니라 마음의 복속을 노린 통치 실험으로, 2년 뒤 출사표와 북벌의 전제 조건이 완성됩니다.

정사와 연의의 차이정사vs연의 (소설)

칠종칠금 자체가 정사 본문이 아닌 한진춘추의 기록이라 사학계에선 사실성 논쟁이 있어요. 연의는 여기에 축융부인·목록대왕·등갑군 같은 판타지급 창작을 대거 더해 남만전을 모험담으로 바꿔 놓았습니다. 노수의 독천, 타사대왕의 독룡동 등도 모두 소설의 산물이죠.

이 전투에서 나온 고사성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