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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릉대전

夷陵之戰

연도: 22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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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 세력

배경

황제에 오른 유비는 관우의 복수와 형주 수복을 내걸고 동정을 선포했어요. 조운이 "국적은 조씨이지 손권이 아니다"라고 간언하고 진진이 말렸지만 꺾지 못했습니다. 손권은 화친을 청하다 거절당하자 위에 신하를 칭해 배후를 안정시키고, 마흔도 안 된 육손에게 전군을 맡겼죠.

전개

기록상 수만의 촉군은 장강 남안을 따라 진격해 초반 기세를 올렸지만, 육손은 험지를 내주며 이릉까지 수백 리를 물러나 반 년을 버텼어요. 무더위에 지친 유비가 수군을 뭍으로 올리고 숲속에 칠백 리 연영(連營)을 펼치자, 육손은 "이제 됐다"며 화공을 명했습니다. 병사마다 띠풀 한 다발 — 사십여 영채가 동시에 불타올랐고, 촉군은 조직적 저항도 못 한 채 무너졌죠. 유비는 밤을 새워 백제성으로 달아났고, 마량을 비롯한 수많은 인재가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결과와 영향

촉의 국력과 인재층이 한 세대분 꺾였고, 유비는 이듬해 백제성에서 세상을 떠납니다. 역설적으로 이 참패 뒤 제갈량이 오와의 동맹을 즉시 복원해, 삼국의 국경은 이후 40년 가까이 큰 틀에서 고정되죠. 관도·적벽과 나란히 "삼국지 3대 전투"로 꼽힙니다.

정사와 연의의 차이정사vs연의 (소설)

연의의 팔진도 — 제갈량이 미리 깔아 둔 돌무더기 진이 추격하는 육손을 가둔다는 결말은 창작이에요. 정사의 육손은 위의 개입 가능성을 읽고 스스로 추격을 멈춘 냉철한 판단가였습니다. "칠백 리 연영" 소식에 조비가 패배를 예언했다는 기록은 정사에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