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전 세력
배경
유비가 한중왕에 오른 219년, 형주의 관우는 기세를 몰아 북쪽 번성의 조인을 쳤어요. 형주 반환 문제로 오와의 감정의 골이 깊어진 상태에서의 북진이었고, 후방 경계용 병력까지 전선으로 끌어올린 것이 화근이 됩니다. 여몽은 병을 핑계로 물러나고 무명의 육손을 후임으로 세워 관우를 안심시켰죠.
전개
가을 홍수가 한수를 범람시키자 관우는 수군으로 우금의 칠군을 통째로 수장시키고 명장 방덕을 베었어요 — "그 위엄이 화하를 뒤흔들어" 조조가 천도를 논의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번성의 조인은 무너지지 않았고, 서황의 구원군이 포위망을 정면으로 뚫었죠. 그 사이 여몽의 병사들이 상인으로 위장한 배로 강을 거슬러 올라(백의도강) 형주의 봉수대를 소리 없이 접수했습니다. 점령지의 가족들이 후대받고 있다는 소식에 관우의 군대는 싸우지 않고 흩어졌고, 관우는 맥성으로 몰렸다가 사로잡혀 처형되었어요.
결과와 영향
촉은 형주와 관우를 한꺼번에 잃었고, 천하삼분지계의 "두 갈래 북진" 구상은 영구히 불가능해졌어요. 손유 동맹은 파탄 났고, 이 원한이 2년 뒤 이릉대전으로 폭발합니다. 삼국지 전체의 운명이 꺾인 변곡점이죠.
정사와 연의의 차이정사vs연의 (소설)
관운장의 뼈를 긁는 화타의 수술(괄골요독)은 연대가 맞지 않는 연의의 창작이고, 조조를 화용도에서 놓아준 은혜 서사와 연결되는 최후 장면들도 각색이에요. 수몰칠군을 "관우가 둑을 터뜨린 계략"으로 그린 것도 연의이며, 정사는 자연 홍수를 이용한 것으로 기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