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전 세력
배경
조조가 한중 원정으로 서쪽에 묶인 215년, 손권은 기록상 10만 대군을 일으켜 회남의 요충 합비를 노렸어요. 성을 지키는 병력은 장료·악진·이전의 7천 남짓. 조조는 떠나기 전 "적이 오면 장료와 이전은 나가 싸우고 악진은 성을 지키라"는 밀함 하나만 남겨 두었습니다.
전개
장료는 "적이 자리 잡기 전에 예기를 꺾어야 한다"며 밤새 결사대 800을 뽑았어요. 새벽, 스스로 갑옷을 여미고 선두에 선 장료는 제 이름을 외치며 손권의 본진까지 쇄도했고, 놀란 손권은 높은 언덕으로 피해 긴 창만 움켜쥐었습니다. 포위당하고도 부하를 구하러 되돌아 뚫는 장료의 분전에 오군의 사기는 시작부터 꺾였죠. 열흘 남짓의 공성이 무위로 돌아가 철군하던 길, 소요진에서 장료가 재차 들이쳐 손권 자신이 말을 몰아 끊어진 다리를 뛰어넘어 겨우 살아났습니다.
결과와 영향
기록상 7천이 10만을 물리친 수성전의 전설이 완성되었고, 합비는 이후로도 오가 끝내 넘지 못한 벽으로 남았어요. "장료가 온다(遼來來)"는 이름이 강동에서 우는 아이를 그치게 했다는 이야기가 이 전투에서 나왔습니다. 위의 동부 전선은 이 승리로 한 세대가 안정되죠.
정사와 연의의 차이정사vs연의 (소설)
연의는 이 대목에서 태사자를 전사시키지만, 정사의 태사자는 9년 전에 이미 병사했어요. 감녕의 백기 야습도 이 전투가 아니라 2년 전 유수구의 일입니다. 장료의 800 돌격 자체는 정사 기록 그대로로, 각색이 필요 없을 만큼 극적이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