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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겸비

姜維

강유

: 伯約 (백약)생몰년: 202 ~ 264

세력 변천: 위 장수 출신으로 1차 북벌 때 촉에 귀순

소개

위나라 장수였다가 촉에 귀순해 제갈량의 유지를 이은 촉한 최후의 대들보예요. 제갈량이 "양주 최고의 인재"라 아꼈고, 그 사후 군권을 이어받아 아홉 차례가 넘는 북벌을 이끌었습니다. 촉이 항복한 뒤에도 포기하지 않고 위장 투항으로 부흥을 꾀하다 난전 속에 최후를 맞았죠. "한 번의 계책으로 세 영웅을 죽였다"는 평처럼, 마지막까지 판을 흔든 집념의 화신입니다.

주요 사건

  1. 227

    출사표 — 북벌 개시

    제갈량이 어린 황제 유선에게 출사표를 올리고 한실 부흥의 북벌에 나선다. 강유가 이 무렵 촉에 귀순했다.

    제갈량유선

  2. 234

    오장원 — 제갈량의 죽음

    사마의와 백여 일 대치하던 제갈량이 진중에서 병사한다. 촉군의 정연한 철수에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달아나게 했다"는 말이 남았다.

    제갈량사마의위연유선

  3. 234

    위연의 최후

    제갈량 사후 철군 순서를 둘러싼 내분 끝에 위연이 반역자로 몰려 죽는다. 정사는 그의 억울함을 시사하는 기록을 남겼다.

    위연

  4. 253

    강유의 북벌

    제갈량의 유지를 이은 강유가 수차례 북벌을 강행한다. 일진일퇴를 거듭했으나 국력 소모라는 비판도 함께 남았다.

    유선

  5. 263

    촉한 멸망

    위군이 험로를 넘어 성도를 급습하자 유선이 항복한다. 검각을 지키던 강유는 마지막까지 부흥을 도모하다 쓰러졌다.

    유선

정사와 연의의 차이정사vs연의 (소설)

연의는 제갈량과의 일기토·계승 서사를 사제 관계로 극화했어요. 정사의 강유는 국력을 소모시켰다는 당대의 비판과, 망국 후에도 충절을 다한 지사라는 평가가 공존하는 논쟁적 인물입니다.

관련 명언

참전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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