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전 세력
배경
234년 제갈량은 기록상 10만의 전군을 몰아 5차(정사 기준 마지막) 북벌에 나섰어요. 역대 북벌의 발목을 잡아 온 군량 문제에 대비해 3년을 비축했고, 목우유마로 보급을 잇고 오장원에 둔전까지 열어 장기전을 준비했습니다. 오와의 동시 출병 약속도 받아냈지만, 손권의 공세는 합비에서 일찍 꺾였죠.
전개
사마의는 위수 남쪽에 보루를 쌓고 어떤 도발에도 응하지 않는 지구전으로 일관했어요. 제갈량이 여인의 옷과 머리 장식을 보내 조롱해도, 사마의는 성난 장수들을 "황제의 불허" 형식으로 눌러 가며 백여 일을 버텼습니다. 대신 촉 사자에게 승상의 식사량과 업무를 물었고, "먹는 것은 적고 일은 많다"는 답에 그 명이 다했음을 읽었죠(식소사번). 그해 8월 제갈량이 쉰넷으로 진중에서 병사하자, 촉군은 강유의 지휘 아래 깃발을 돌려 반격 태세를 취해 추격군을 물리고 정연하게 물러났습니다 —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달아나게 했다"는 말이 여기서 났어요.
결과와 영향
제갈량 시대의 북벌이 막을 내리고, 촉위 국경은 이후 강유의 시대까지 소강기에 들어갔어요. 위연은 철군 서열 다툼 끝에 목숨을 잃었고, 촉의 군권은 장완·비의를 거쳐 강유에게 넘어갑니다. 철수한 촉군의 진영 터를 둘러본 사마의는 "천하의 기재로다"라는 찬사를 남겼죠.
정사와 연의의 차이정사vs연의 (소설)
수명 연장을 비는 칠성등 의식, 죽은 제갈량의 목상으로 사마의를 쫓는 장면, 위연이 등불을 꺼뜨리는 전개는 모두 연의의 창작이에요. "사공명 주생중달" 자체는 한진춘추가 전하는 당대의 말로, 각색이 아닙니다. 위연의 최후도 정사는 반역이 아닌 내분으로 시사하죠.